불교연구 창간사
불교연구 창간사
<불교연구>지를 새로 펴내면서 저희들이 뜻하는 바를 말씀드려 인사의 말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인연이 닿지 않아 이런 일 하나 못했다고 할까, 참으로 느지막하게 꼭 해야 할 일을 시작한다는 느낌입니다.
우리나라 안에는 학문적으로 불교를 연구해서 그 결과를 발표하는 전문 학술지가 많지 않습니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이 매년 1회 발행하는 <불교학보>가 제일 무게 있는 불교학술지이고, 또 하나는 한국불교학회가 역시 연 1회 학술발표회를 계기로 작은 논문들을 싣는 학술지가 있습니다. 그 밖에는 원광대학교에서 원불교를 중심으로 불교 관계 연구논문이 실리는 잡지가 있고, 각 대학교의 학술연구논문집 등에 산발적으로 불교 관계 연구논문이 실려 온 것을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제가 늘 안타깝게 생각해 온 것은 그 논문들은 대체로 몇 안 되는 전문가들이나 읽어서 알 수 있을 듯한 매우 내용이 난삽한 것이거나, 아주 특수한 문제들을 다룬 것이라는 인상을 주어, 실제상 전문가 이외의 독자들에게는 접근이 어려운 것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전문가의 숫자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을 나오고도 학문을 계속할 만한 여건이 되어 있지 못한 우리의 실정에서는 동국대 불교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전적으로 학문만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지 못합니다. 여기에는 우리 불교계, 우리 사회가 불교학의 귀중한 값어치를 모르고 그 발전을 도모하거나 지원하지 않는 것이 큰 이유가 되기도 하겠지만, 그 이외에 불교학 하는 사람들 자신이 반성하고 고쳐야 할 점도 많은 것입니다.
오늘의 불교학은 처음 동기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보면 불필요한 일에 많은 정력 낭비를 하고 실제로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짙습니다. 불교학, 또는 불교연구를 왜 하느냐 하는 것부터 깊이 재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알려 하고, 무엇을 밝히려 하는가? 이것을 알면 결과적으로 어떤 이익이 있는가? 누구를 이익되게 하는 것인가? 지금 우리가 자기 자신이나 우리 이웃들에게 불교학자 또는 불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풀어 주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 저는 이것을 우리 학자라는 사람들, 학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심사숙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있는 사람들은 오늘 불교연구의 경향이 너무나 역사학적이거나 문헌학적인 데에만 치우쳐 있는 것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예전 사람들이 표시해 온 관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맴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거기서 과감히 뛰쳐나와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 자신의 문제의식을 갖고 탐구해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저의 작은 경험에 의하면 오늘 이 시대 한국의 불교연구가들은 한꺼번에 해야 할 많은 일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헌연구도 역사연구도 중요하지요. 전적으로 어느 작은 구석구석의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을 많이 길러내고 먹여살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절실한 것은 수많은 신도 대중, 그리고 아직은 비신도인 다수 국민들, 특히 요사이 급증하고 있는 기독교인들, 이들에 대한 올바른 불교 인식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학문에 종사하는 것을 주 임무로 삼는 대학교수가 항상 그러한 요청에만 응하고 있을 수는 없지만 우리의 학문이 또한 그러한 절실한 과제를 외면한 상태에만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 불교계도 전문적으로 포교를 전담하는 분들이 많이 나왔고, 또 일반 사회지도자들 중에서도 불교에 귀의하고, 불법에 따라 일하며 살고자 거룩한 뜻을 세운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이분들을 위한 <불교연구>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꿈을 지금 실현시켜 보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대학에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면서 사회 속으로 들어가 참여 봉사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많이 경험해 왔습니다. 이제 정년을 앞두고 좀 더 집중적으로 이 시대 이 나라에서 요청되는 방향으로 지혜와 능력을 쏟는 길을 모색해 보려는 것입니다.
우수한 인재들을 키우는 것은 불교 중흥 대계를 위해서 가장 절실한 과제입니다. 대학을 나온 젊은 우리 불교계 학도들이 갈 곳이 없습니다. 더 공부를 해야지요.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합니다. 저는 그들의 알찬 힘의 배양을 위해서도 이 잡지가 중요한 연분(緣分)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합니다. 물론 이미 전임교수가 된 소장학자들도 이에 적극 참여하게 될 것은 물론입니다.
저는 아직도 우리 학계는 외국에서 이루어진 업적에서 배울 점을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외국 학계의 업적을 취사선택하면서 주체적으로 섭취할 수 있게 하는 창문, 또는 교량 구실도 해야 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불교연구>지는 엄격한 편집방침에 따라 편집위원회에서 합의된 원고만을 실을 작정입니다. 그리하여 요사이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활자가 갖는 마력을 이용한 여론의 오도를 극복해 갈 것입니다.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 사회 속에서의 정법의 실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선 정법을 알리는 일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간혹 본의 아닌 실수나 사건이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현명한 독자들께서 잘 판단하시고 삭여 주시고 지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는 이 책을 1년에 한 번만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적어도 두 번은 내야겠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희들의 재정 사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 책을 회원제로 구독하시는 길을 열까 합니다. 그냥 낱권으로 사 보실 수도 있겠지만, 회원이 되시면 같은 일에 동사(同事)하는 보살로서 동지가 되시는 것이겠지요.
저희들은 불교를 알고, 부처님 법신(法身)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가 되는 기쁨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주변에 아픔과 쓰라림과 외로움과 원통함을 못 이긴 많은 이들이 계십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남의 아픔이 없어지지 않는 한 나에게도 진정한 평안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너 자신을 다시 생각하라고 부처님은 대승경전들에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불교는 연구할 것이 아니라 깨닫고 실천하면 되는 것이라는 의견도 없지 않습니다. 틀림없는 의견이기는 합니다만, 이 현실의 인연소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바꾸면서 살아갈까를 모르고서는 깨달은 척만 하게 되는 것이지 참된 깨달음, 참된 삶이 되지 못하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사회의 개조에 기여할 수 있는 불교사상의 개발에 특히 힘을 기울일 작정입니다.
동지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기대합니다.
1985년 7월 15일
<불교연구> 편집위원회 대표 이기영
불교연구 창간호(1985년 8월 1일) 목차
김문환, "쇼펜하우어의 미학사상: 미적 무욕성(無欲性)과 열반."
Robert Thurman, "무엇을 믿고 어떻게 수행할까? 초월(超越)의 길, 내재(內在)의 길."
梶山雄一, "회향, 공덕의 전이(轉移)와 전화(轉化): 공(空)과 관련하여."
Aramaki Noritoshi, "The Indian Concept Dharma Has its Two Aspects: Old Degenerate Dharma and New Creative Dhamra."
이기영, "법(法)에 관한 연구 I: Hiraṇyagarbha와 Tathāgatagarbha를 중심으로."
玉城康四郞, "화엄경에 있어서의 불타관."
Edward Conze, "자·비·희·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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